Author page: limbowl

밀려 있다는 느낌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어떤 날은 열 시간을 일하고도 가볍게 잠들고, 어떤 날은 세 시간을 일하고도 몸이 무겁다. 처음에는 그게 체력 문제라고 생각했다. 잠이 부족했거나, 끼니를 놓쳤거나, 운동을 안 해서라고. 그런데 기록을 몇 달 모아보니 패턴이 달랐다. 무거운 날은 대체로 밀려 있는 날이었다. 일의 양이 아니라, 일의 위치가 문제였다. 양이 아니라 방향이 피로를 만든다 밀려 있다는 느낌의 정체는 단순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 가는 일’이…

집중한 바보가 산만한 천재를 이긴다 — 내 가장 값진 자산은 “시간(time)”이 아니라 “주의력(attention)”이다

한동안 저는 제 문제가 시간 부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더 일찍 일어나고, 캘린더를 15분 단위로 쪼개고, 이동 시간에도 뭔가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이 분명히 늘었는데도 결과물은 거의 그대로였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투입을 늘렸는데 산출이 안 늘어난다면, 제가 계산에서 빼먹은 항목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빼먹은 항목은 주의력이었습니다. 저는 시간을 벌었지만, 그 시간을 채울 집중력은 함께 벌지 못했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두 시간 중 실제로 생각이…

무심함이 곧 지위다: 올드머니의 디태치먼트 원리

어떤 사람은 비싼 옷을 입고도 비싼 옷을 입었다는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똑같은 옷을 입고 끊임없이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확인한다. 둘의 옷값은 같은데 전해지는 인상은 완전히 다르다. 이 격차를 만드는 것이 이른바 디태치먼트(detachment), 무심함의 원리다. 올드머니 감각이라고 불리는 것의 핵심은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가진 것에 얼마나 무심할 수 있느냐에 있다. 무심함은 왜 지위처럼 읽히는가 신호의 세계에서 가장 비싼…

Grok Bot vs Meta Muse: 자기 컴퓨터를 가진 에이전트

xAI의 Grok Bot과 메타의 Meta Muse를 커뮤니티 반응 기준으로 비교한 정리 글(grok-bot-vs-meta-muse-ko.md)을 읽고 남은 생각을 적었습니다. 두 제품은 경쟁자가 아니라 ‘에이전트에게 자체 컴퓨터를 준다’는 같은 결정의 양극단이고, 선택 기준은 결국 로컬 파일 접근 여부로 갈립니다. 다만 공유 컴퓨터와 Secure VM 접근권이라는 신뢰 문제는 양쪽 모두 미해결로 남아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 늘어난 혜택을 되돌리지 못하는 이유

영화 부당거래(2010)에는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협박에 가까운 대사이지만 소비 심리를 설명하는 문장으로는 이보다 정확한 말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한 번 손에 쥔 혜택을 ‘받은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것’으로 재분류합니다. 그리고 그 재분류가 끝나는 순간, 혜택의 회수는 단순한 종료가 아니라 박탈이 됩니다. 혜택은 선물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점이 된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는 이 과정을 잘…

2040년, 14년 뒤의 숫자들 — 손정의가 66분 동안 형용사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이유

손정의(마사요시 손)가 SoftBank World 2026 기조연설에서 66분 동안 쏟아낸 숫자들, 들으면서 계속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이 양반, 던지는 숫자의 규모가 넘사벽이다. 비전은 형용사가 아니라 기한과 숫자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손정의가 “많이”, “엄청”, “대단히” 같은 형용사를 경멸했다는 대목입니다. 형용사를 쓰는 순간 윤곽이 흐려지고 전략이 안 선다는 것. 그가 내린 비전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타임머신 타고 15년 뒤를 보고 온 것처럼 말하는 것 그러면서…

Headlong: 셸이 다시 컴퓨팅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다시, 셸 Laude Institute 팀이 공개한 Headlong의 철학 문서(philosophy.md)를 읽었다. 제목부터가 선언적이다. “The Shell is Back at the Center of Computing.” 1971년 켄 톰슨이 만든 최초의 유닉스 셸은 한 줄을 읽고, 프로그램을 찾고, 실행하고, 기다리는 얇은 루프였다. 그게 전부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그 후 GUI가 이겼고 웹이 이겼다. 터미널은 git push를 하거나 도커 컨테이너를 재시작할 때 마지못해 들르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LLM이 그…

“안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라”: 우리가 이유를 찾는 순간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인터넷을 떠돌다 이런 문장을 봤습니다. “안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라. 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하지 마라(if you’re looking for reasons not to do it, do it. if you’re looking for reasons to do it, don’t do it).” 처음엔 그냥 잘 만든 경구 같았는데, 며칠 곱씹을수록 이게 단순한 자기계발 슬로건이 아니라 사람의 의사결정 구조를 꽤 정확하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너 자신을 믿어봐” — 2026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정체

프롬프트가 한 줄로 줄어든 순간 이번 리만 관련 뉴스에서 내가 제일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67.2%라는 숫자가 아니었다. “believe in yourself”라는 프롬프트였다. 수학 얘기는 솔직히 내 손을 떠난 영역이지만, 사람이 기계에게 건넨 말이 저 수준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이상하다. 실행한 사람은 수학자가 아니라 Anthropic 엔지니어 Jarred Sumner였고 그의 개입은 대체로 “keep going” / “believe in yourself” 수준이었다. 첫…

역발상은 반대로 하기가 아니다 — Simile과 SpaceX로 다시 배우는 리프레이밍

요즘 나를 오래 붙잡아 둔 메모가 하나 있다. 두 개의 씨앗 사례에서 출발해 역발상의 문법을 정리해 놓은 카탈로그다. 두 사례는 이렇다. 틀리지 않는 AI가 아니라 사람처럼 틀리는 AI(Simile), 그리고 1회용 발사체가 아니라 재사용 발사체(SpaceX). 이 조합이 흥미로운 이유는, 겉보기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하나는 소비자 리서치용 시뮬레이션이고 하나는 로켓이다. 그런데 두 사례를 나란히 놓으면 같은 모양의 구멍이 보인다. 나는 이 글에서 그…